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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가락동 유물

  • 가락동유적은 송파구 가락동의 해발 약 40m 가량 되는 낮으막한 야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한강에서 직선거리로 약 2㎞ 가량 떨어져 있다. 유적은 1963년 고려대학교 조사단이 이 일대를 답사하던 중 발견되어 간단한 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청동기시대의 움집터와 민무늬토기,돌칼,돌화살촉,가락바퀴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 움집은 10×7m가량의 네모꼴을 하고 있었는데, 원래 약간 경사진면을 10~50cm 가량 파서 만들었으며 내부에 화덕시설이나 기둥구멍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 이 유적에서 출토된 민무늬토기는 이른바 가락식토기로 불리워지며, 우리나라 서북한지방의 팽이토기(角刑土器)의 변형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청동기시대 전기의 토기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민무늬토기 바리(無文土器鉢)
  • 민무늬토기 바리(無文土器鉢)
  • 이른바 가락식토기 또는 변형불리는팽이토기라고 불리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민무늬토기이다. 아가리에 넓이 4cm의 점토띠의 이중으로 접어 붙이고, 띠의 아리 접착부분은 손톱이나 나무조각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짧은 빗금무늬를 베풀고 있다.바닥은 비교적 좁고 편평하게 되어 있으며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넓어져서 나팔모양을 이루다가 곧은 입술로 이어지고 있다.
  • 입지름 37.0cm
  • 밑지름 11.8cm
  • 높이 42.18cm

민무늬토기 항아리(無文土器鉢)
  • 민무늬토기 항아리(無文土器鉢)
  • 청동기시대 전기의 토기로는 보기 드물게 목이 달린 항아리로 곧추선 목의 길이는 약3cm 가량 된다. 어깨는 곧추선 목에서 갑자기 벌어져서 몸체로 이어지다가 점차 좁아져서 좁은 바닥으로 이어지는데, 몸체의 곡선이 매우 유려하다.점토질의 바탕흙에는 굵은 모래 알갱이가 많이 섞여 있고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구워진 것으로 보이며 표면은 매우 거칠다.그릇의 두께는 0.6~1.0cm 가량 된다.
  • 입지름 15.0cm
  • 밑지름 11.4cm
  • 높이 33.9cm

가락바퀴(紡錘車) (Spinule Whorl)
  • 가락바퀴(紡錘車) (Spinule Whorl)
  • 푸른 빛을 띠는 반암(斑岩)을 갈아서 만든 것이다. 이러한 가락바퀴는 물레로 실을 지을 때 쓰이는 나무나 쇠로된 가락에 끼워서 회전이 잘 되도록 하는 것으로 청동기시대 이래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흙으로 빚어서 굽거나 돌을 갈아서 만든 것들이 많이 발견된다.
  • 입지름 15.0cm
  • 밑지름 11.4cm
  • 높이 33.9cm

돌끌
  • 돌끌
  • 푸른 빛을 띠는 반암(斑岩)을 갈아서 만든 것이다. 이러한 가락바퀴는 물레로 실을 지을 때 쓰이는 나무나 쇠로된 가락에 끼워서 회전이 잘 되도록 하는 것으로 청동기시대 이래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흙으로 빚어서 굽거나 돌을 갈아서 만든 것들이 많이 발견된다.
  • 길이5.0cm
  • 두께0.8cm

숫돌
  • 숫돌
  • 길이4.8cm 4.0cm
  • 폭2.4cm 2.2cm

돌화살촉
  • 돌화살촉
  • 길이3.0cm
  • 폭0.9cm
  • 두께0.3cm

초기백제 석촌동 유물

짧은목항아리 (短頸壺)
  • 짧은목항아리 (短頸壺)
  • 바탕흙은 비교적 잘 정선되어 있으며 약간 낮은 온도에서 구어져서 바닥쪽으로 갈수록 질이 무르다. 목은 안으로 약간 기울면서 짧게 곧추서서 끝나고, 어깨는 매우 벌어져 있다. 바닥은 아가리 보다 약간 넓은데 점토판을 안쪽에서 붙여 만든 것으로 편평하다. 이 토기는 회색계통이지만 약간 검은색을 띠는데, 이와 비슷한 모양의 토기가 가락동 2호 무덤에서 출토된 예가 있으며, 가락동2호 무덤의 것은 반들거리며 흑색으로 되어있다.
  • 입지름9.9cm
  • 밑지름13.2cm
  • 높이16.5cm

긴목항아리 (廣口長頸口形壺)
  • 긴목항아리 (廣口長頸口形壺)
  • 고운 점토질의 바탕흙에는 가는 모래가 약간 섞여 있어서 매우 단단하게 구워져 있으며, 표면은 회청색을 띤다. 몸체는 약간 긴 공모양을 하고 있으며, 나팔처럼 널게 벌어진 아가리가 이러한 토기의 특징이다. 목의 가운데에 한줄의 돋을띠(突帶)가 돌려져 있다. 이 토기 역시 초기백제지역에서 흔히 출토되는 전형적인 백제토기로 목에 돋을 무늬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약간 늦게 출현한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 입지름18.1cm
  • 최대폭24.1cm
  • 높이28.2cm

작은바리 (小刑鉢)
  • 작은바리 (小刑鉢)
  • 붉은색 계통의 토기이나 회흑색을 띠는 부분도 있는데, 바탕흙에는 가는 모래가 많이 섞여 있어서 그릇의 표면은 거친 느낌을 준다.편평한 바닥에서 몸체는 조금씩 벌어지며서 위로 이어져서 그대로 아가리를 이룬다.표면에는 전혀 아무런 무늬도 없다.

깊은바리 (深鉢刑土器)
  • 깊은바리 (深鉢刑土器)
  • 적갈색 연질로서 바탕흙에는 모래가 많이 섞여 있어서 그릇의 표면은 매우 거칠다.목은 짧게 벌어지며 발달된 입술로 마무리되며, 점차 벌어지는 어깨는 입지름에 비해 비교적 길쭉한 몸체외 연결되고 바닥은 편평하다.몸체에는 돗자리무늬(繩席文)가 베풀어져 있는데, 이러한 토기는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에서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비교적 오랜 기간동안을 같은 전통을 가지고 존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입지름15.0cm
  • 밑지름11.5cm
  • 높이15.4cm

병 (甁)
  • 병 (甁)
  • 편평한 바닥에 양파모양의 몸체를 하고 있으며, 짧고 목은 밖으로 벌어지면서 둥글게 말려서 끝난다. 바탕흙은 잘 정선되어 있고 표면색은 짙은 회청색을 띠나 바닥의 일부는 구워질때 불을 덜받아서 적갈색을 띠고 있다.
  • 입지름15.0cm
  • 밑지름11.5cm
  • 높이15.4cm

금제달개 (金製瓔各)
  • 금제달개 (金製瓔各)
  • 제3호 돌무지무덤 주변에서 출토된 것으로, 얇은 원형 금판에 지름1mm가량의 작은 구명을 뚫고 금실을 꿴 것이다. 금관 등에 달았던 장식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금장식의 출토로 인하여 이 무덤에 묻혔던 인물의 신분을 왕이나 왕족 중의 하나로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지름0.8cm
  • 지름0.8cm
  • 두께0.2cm

옥을 갈던 돌 (玉刑石)
  • 옥을 갈던 돌 (玉刑石)
  • 각섬암(角閃岩)제의 네모난 석판으로 윗면 7개의 홈이 파여져 있다.현재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파손되지 않은 곳은 잘 갈아져 있으며 있는 홈에 옥 등을 갈아서 가공하던 돌로 생각된다.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러한 옥을 갈던 돌이 발견된 예가 없으나 일본의 경우 굽은옥(曲玉)을 갈았던 돌이 발견되고 있다.
  • 지름22.5cm
  • 폭23.2cm
  • 두께6.5cm

금제고리 (金製環)
  • 금제고리 (金製環)
  • 원형 또는 타원형의 고리들인데, 전체가 다 금이 아니고 껍질만 금으로 된 것이다.심의 재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청동으로 추정되며, 귀걸이의 한 부분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 지름1.6~3.2cm
  • 굵기0.3~0.5cm

철제낫 (鐵鎌)
  • 철제낫 (鐵鎌
  • 철판을 두드려서 만든 것으로 끝은 약간 구부려서 뾰족하게 하였으며, 자루가 부착되는 곳은 철판을 구부려 말아서 자루를 묶을 수 있게 하였다.자루는 날과 직각이 되게 묶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이것이 이른 시기에 출토되는 낫의 특징이다.자루가 있던 부분에 부식된 목질이 붙어 있는 것도 있다.
  • 길이22.9~25.4cm
  • 폭2.9~3.8cm
  • 두께0.5~0.8cm

투겁도끼 (鐵斧)
  • 투겁도끼 (鐵斧)
  • 철판을 두드려서 날을 만들고 자루를 꽂는 곳은 이것보다 더 얇게 두드려펴서 둥글게 말았다.날은 부채꼴로 되어 있으며, 자루를 끼웠던 투겁은 단면이 약간 찌그러진 원형인데, 내부에 자루가 부식된 채로 약간 남아 있다.
  • 길이10.5cm, 13.6cm
  • 날폭3.6cm, 6.4cm
  • 두께3.5cm, 4.8cm

돌추 (石錘)
  • 돌추 (石錘)
  • 조그만 종모양의 돌로 된 추모양의 석기이다.석재는 현무암제로 매우 가벼우며 표면은 매우 거친데, 용도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위쪽에 구명이 뚫려 있는 점으로 미루어, 무엇엔가 매달아 사용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 높이7.7cm
  • 단면5.3×3.9cm
  • 무게160g

초기백제 가락동 유물

  • 서울시 송파구의 석촌동과 가락동 일대에는 초기 백제의 고분군이 밀집해 있었는데, 소개되는 유물은 이들고분중 가락동1.2 호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1969년에 조사되었다.
  • 일반적으로 백제의 무덤이 구릉상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두 무덤은 평지에 자리하고 있어 특징적이며, 겉모습은 꼭대기가 잘린 사각뿔(方 形)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밑변의 길이는 약 15m가량되고 조사 당시 남아있던 무덤의 높이는 약 2m가량 되었다.
  • 무덤의 축조방식을 보면, 지표면을 약간 파서 움을 만들고 그 바닥의 네 모서리에 강자갈을 1개씩 놓고 그위에 시신을 안치한 나무널을 놓았다.이 나무널의 주변과 윗부분은 회가 섞인 점토를 겹겹이 다져서 덮었고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봉토의 윗부분은 크기 20cm 가량의 강돌과 깨진 돌을 덮어서 이음돌시설을 하고 그 위에 약간의 흙을 덮어서 마무리 하였다.
  • 이러한 이음돌시설은 봉토(封土)가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백제무덤의 특이한 구조로, 고구려계의 돌무지무덤의 구조와 관련된 특징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 이들 무덤에서는 흑색토기항아리를 비롯한 토기류와 꺽쇠, 손칼, 띠고리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는데, 이들 무덤이 축소된 연대는 기원후 2~3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검은토기 (黑色土器短)
  • 검은토기 (黑色土器短)
  • 전면이 흑색으로 덮여있고 광택이 나는 흑색토기로 바탕흙은 잘 마연되어 있다.아가리는 안으로 약간 좁아지면서 곧추서 있고 벌어진 어깨는 점차좁아져서 몸체를 이루다가 편평한 바닥으로 이어진다.어깨에는 약2mm 간격으로 삼각형의 점무늬를 한줄 돌리고, 그 밑에는 가는 선을 구 줄 그어서 문양대를 만들고 있으며, 그내부에는 옆으로 누운 문살무늬를 정교하게 베풀고 있다.
  • 입지름9.3cm
  • 밑지름7.0cm
  • 높이7.5cm

둥근밑항아리(圓低)
  • 둥근밑항아리(圓低)
  • 전체적으로 야간 눌린 듯한 공모양을 하고 있으며 목은 짧게 약간 밖으로 벌어졌던 것으로 생각되나 깨어져서 알 수 없다.바탕흙에는 고운 모래 알갱이가 많이 섞여 있으며 단단하게 구워져 있다.표면색은 회청색 계통이며 몸체의 전면에 꼰무늬(繩文)을 두드려서 베풀었다.
  • 입지름11.0cm
  • 높이19.0cm

독널(甕棺)
  • 독널(甕棺)
  • 굵은 모래 알갱이가 섞인 바탕흙으로 구어서 표면은 단단하나 거친 감을 준다.몸체는 약간 길쭐하고 목은 짧게 밖으로 벌어져 있다.표면에는 두드린 문살무늬(格子文)가 촘촘히 베풀어져 있다.독널의 아가리는 깨어진 토기 조각으로 막혀 있었다.이러한 독널은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움무덤 등 다른 무덤과 함께 쓰인 예가 많다.
  • 입지름30.0cm
  • 높이44.0cm

초기백제 몽톤토성 유물

  • 몽촌토성은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백제초기의 토성으로, 백제가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한 한성백제시대 (?~A.D.475)의 중요 거성 (居城)의 하나로 추정되어 왔다.
  • 이 곳에서는 1983년 부터 1989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6차에 걸쳐 서울대학교박물관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6차에 걸친 조사로 움집, 저장구덩이를 비롯하여 대규모의 지상건물지와 연못 등이 확인 되었고,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은 실로 어마어마한 양으로 백제토기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토기류 외에도 서진전문도기편(西晋餞文陶器片), 청자벼루등을 비롯한 각종 중국자기편이 확인되어 몽촌토성의 상한년대를 3세기 중엽경까지 끌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 그외에도 연화문막새기와 등을 비롯한 각종의 백제기와가 출토되어, 이러한 기와를 올린 기와집이 축조되었으며 여기에 중요 인물이 거처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이상과같은 몽촌토성은 6차에 걸친 조사를 통하여 어느정도 성격이 파악되었으며, 문헌사료가 빈곤한 백제초기사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의 역할을 하고 있다.
  • 특히 몽촌토성은 초기백제의 도읍인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비정되기로 하였는데, 대형지상건물의 존재, 연화문와당 등의 각종 기와류의 존재 및 중국제 청자벼루의 출토 등에서 몽촌토성 거주집단의 성격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몽촌토성이 한성백제시대의 중요한 역할을 곳이었음이 분명해졌다.
굽접시 (高杯)
  • 굽접시 (高杯)
  • 짙은 회청색을 띠는 매우 단단한 토기로 나팔모량의 낮으막한 굽다리를 가지고 있다.낮고 넓은 몸체는 갑자기 꺾이면서 뚜껑받이 턱을 이루고 여기에서 다시 꺾여서 곧추선 아가리를 만들고 있다.몽촌토성에서 많이 출토되는 토기의 한 종류로 원래는 뚜껑이 덮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 입지름11.4cm
  • 밑지름8.8cm
  • 높이7.2cm

세발토기 (三足器)
  • 세발토기 (三足器)
  • 납작한 몸체에 세개의 다리가 달려 있는 토기로 회청색의 단단한 토기질로 되어 있다.몸체에는 깎아서 다듬은 흔적이 횡으로 나있고 다리도 엮시 깎아서 다듬었다.어께에는 지름0.5cm가량의 원이 한 줄 찍혀 있다.이러한 세발토기는 주로 백제지역에서 출토되는 특징적인 토기로 남쪽으로 갈수로 몸체가 깊어지는 경향이 있다.
  • 입지름14.0cm
  • 높이8.3cm

계란모양토기 (卯形土器)
  • 계란모양토기 (卯形土器)
  • 점토에 굵은 사암이 많이 섞인 바탕흙으로 빚은 길쭉한 토기로 표면은 적갈색을 띄어 거친 감을 준다. 길쭉한 계란 모양의 몸체는 아가리 바로 밑에서 약간 좁아져서 목을 이루다가 다시 넓어져서 밖으로 벌어지면서 몸체의 윗부분에는 꽃무늬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문자무늬(格子文)가 찍혀 있으며, 바닥에는 그을음이 조금 묻어 있다.이러한 형태의 토기 역시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이래로 한강유역에서 것으로 백제의 특징적인 토기의 하나이다.이러한 토기는 주로 액체를 끓이는데 사용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때로는 독널로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이 토기도 독널로 이용된 것이다.
  • 입지름24.5cm
  • 높이39.5cm

둥근밑항아리 (圓球壺)
  • 둥근밑항아리 (圓球壺)
  • 회청색 경질의 매우 단단한 토기이다.바탕흙에는 고운 모래가 약간 섞여 있으며, 그릇의 두께는 비교적 얇은 편이다. 몸체는 약간 각이 진 구형이고 목은 약간 밖으로 휘는 듯하게 뻗어 있으며 목의 중간에 한줄의 돋을 띠(突帶)가 돌려져 있다.몸체 윗부분에는 무늬가 전혀 없으나 바닥쪽에는 두드린 문살무늬(格子文)가 베풀어져 있다.
  • 입지름11.5cm
  • 목지름8.7cm
  • 높이18.5cm

계란모양토기 (卯形土器)
  • 계란모양토기 (卯形土器)
  • 짙은 회정색의 단단한 항아리로 바탕흙에는 미세한 모래 가루가 약간 섞여 있고, 표면에는 자연유(自然釉)가 많이 흘러 내려 있다.입술은 여러번 손질하여 홈이 한줄 피여 있으며, 짧은 목에는 길다란 계란 모양의 몸체가 달려 있다.바닥은 뾰족한편이다.
  • 입지름25.4cm
  • 목지름20.0cm
  • 높이44.4c

원통형그릇받침 (圓筒形器臺)
  • 원통형그릇받침 (圓筒形器臺)
  • 잘 정선된 구운 점토질의 바탕흙으로 빚은 회색연질토기이다.바닥은 깨어져서 정확한 형태를 알 수는 없지만 나팔모양의 굽받침이 달렸던 것으로 생각된다.아가리는 나팔모양으로 벌어져 있어 여기에 항아리 등의 그릇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하였다.몸체는 좁은 띠에 의하여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띠와 띠 사이에는 지름 1cm내외의 구명이 6줄 뚫려 있다.이러한 토기는 몽촌토성을 제외하고는 출토례가 거의 없는데, 위에 항아리 등을 올려놓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제사 등과 같은 특수한 용도로 사용되었던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소장-
  • 지름18.9cm
  • 현재높이54.0cm

굽단지 (臺附小壺)
  • 굽단지 (臺附小壺)
  • 몽촌토성에서는 2점 밖에 출토되지않은 드문 토기로 짧은 목이 달린 구형의 몸체에 나팔모양의 낮은 굽다리가 달려있다.몸체의 가운데에 3줄의 선이 돌아가며 토기 안팎에 물레질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뚜껑도 함께 출토되었는데 뚜껑의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으며 이것은 구운 후에 뚫은 것이다.
  • 입지름7.0cm
  • 밑지름8.4cm
  • 높이10.5cm

뼈로 만든 비늘갑옷 (骨製甲)
  • 뼈로 만든 비늘갑옷 (骨製甲)
  • 우리나라에서는 몽촌토성에서 유일하게 출토된 뼈로 만든 비늘갑옷이다.돼지나 사슴뼈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비늘(小札)에 구멍을 뚫어서 서로 엮을수 있도록 되어있다.비늘갑옷(札甲)은 판갑옷(短甲)에 비해 가볍고 활동성이 커서, 가마용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쇠로 만드것은 많이 출토되나, 뼈로된 것은 이것이 유일한 예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 가로44.8cm
  • 세로22.2cm

중국청자 (中國靑磁)접시
  • 중국청자 (中國靑磁)접시
  • 매우 정선된 바탕흙으로 구운 중국계 청자접시이다.굽은 이른바 가권족(假圈足)으로 되어 있으며, 굽바닥을 제외한 전면에 담녹색 또는 연한 쑥색의 유약이 발라져 있는데, 빙렬(永裂)이 있다.중국 육조(六朝)시대의 청자로 생각된다.
  • 입지름13.6cm
  • 밑지름5.3cm
  • 높이3.3cm

중국서진회유전문도기조각 (中國西晋灰釉錢文陶器片)
  • 중국서진회유전문도기조각 (中國西晋灰釉錢文陶器片)
  • 조그마한 조각으로 1989년에 출토된 것이다.흑갈색의 유(釉)가 발라져 있으며 동전무늬가 찍혀 있다. 또 1985년의 조사에서는 이러한 동전무늬가 찍힌 도기(陶器)조각이 6점이 발견되었는데, 중국 西晋에서 제작된 것으로 이것들의 출토로 인하여 몽촌토성의 상한연대(上限年代)가 3세기 중엽 이전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 가로3.8cm
  • 세로5.2cm
  • 두께0.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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